수락산

2008. 5. 17. 23:29내 삶의 흔적들/일상

 

 

 

모처럼의 주말을 즐거운 산행으로 마무리했다

매 년 5월이면 회사 야유회를 가는데 올해엔 작년과 같이 등산을 하기로 했다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서울 외곽순환도로를 따라가다가 의정부 인터체인지로 나가서 만나는 장암역 건너편...

석림사를 거쳐 깔딱 고개를 지나 정상에 오른 후 기차바위를 타고 쌍암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장암역 근처에 도착한 후,

산행을 마친 후 점심을 먹을 식당에 주차를 해 두고는 석림사를 스치며 산행이 시작되었다

 

 

 

 

 

고운 햇살이 내려온다.

인적이 많은 길 양쪽에는 아카시아 꽃이 만발해 있고

송골송골 돋아나기 시작하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콧등을 스칠 때마다

한 아름 품고도 남을 여인의 향기가 전해져 온다

 

그 향기에 취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에 가파른 산을 오르는 발자국 속으로는

턱까지 찬 숨이 벌써 쇳소리를 내며 뚝뚝 떨어진다

상기된 얼굴을 본 동료가 잠시 쉬자며 사진 한 장을 찍어준다

 

그것도 잠시...

뒤따라 올라오는 다른 동료들의 성화에 무거워진 발자국을 겨우 옮겨서

숨이 깔딱 넘어갈 만큼 경사진 깔딱 고개를 지나며 잠시 숨을 고른다

 

 

 

 

 

 

 

"휴~

이것 참 큰일이다

6월 초에 지리산에 가자고 연락이 왔는데 이래 가지고 어떻게 거길 간단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간다

 

이번에 등산할 지리산 코스는 10년 만에 개방하는 코스라는데 놓치기는 아깝고

큰맘 먹고 따라가자니 다른 일행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스럽고...

 

동료가 건네주는 오렌지 몇 조각을 타는 것 같은 입속으로 집어넣으니 참으로 꿀맛 같다

물병의 반을 목 속으로 쏟아붓고는 흥건한 땀을 식혔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내내 등산로는 온통 바위들뿐이다

엄청난 경사에 밧줄을 잡고 오르기도 하고 부서진 돌조각들 때문에 미끄러지며 오르다 보니

갑자기 '수락산'이라는 이름을 '수악산'으로 부르고 싶어졌다

 

"즐거울 락"자의 수락산이 아닌 아주 험한 "악산"이라는 뜻의 수악산으로...

 

몇 미터 가다가 쉬고 몇 미터 가다가 쉬기를 수십 번.

이정표가 나왔다, 정상까지 150m 그리고 20분...

이제 끝이 보이는 건가

 

 

 

 

 

 

 

 

정상에 도착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동료가 주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었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등이며 이마 그리고 뺨을 스치니

그동안의 힘들었던 여정이 한순간에 달콤함 속으로 녹아든다

 

뿌듯하다

이런 맛에 정상에 오르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것 일 거다

 

우두커니 바위에 앉아 산 아래 먼 경치를 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저 아래쪽이 가까이에 있는 푸른 나무에 대비되어 마치 뿌연 안갯속에 묻혀있는 것 같다

   좀 더 투명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내려가는 길...

기차 바위에 가까워질 때쯤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온다

 

가파르고 평평한 바위..

그 길이도 길이지만, 크기며 생김새가 내 눈 속으로 쏜살 같이 빨려 들어온다

아~이 황홀한 느낌은 뭘까?

정말 그 힘들었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하다

 

자세히 보니 처음에는 하나였던 바위가 갈라진 후, 틈이 점점 커지며 생긴 고랑이

일정한 간격으로 위에서 아래까지 연결되어 있다

 

마치 부드러운 시루떡을 사람의 세밀한 손으로 밀어낸 것 같은.. 그래 바로 그 느낌이다

산속에 어떻게 이런 바위가 만들어졌을까?

참 신기하기도 하다

 

밧줄을 타고 내려가는 내내 그 신기한 광경에 빠져 버렸다

일부러 만들기도 어려울 텐데...

 자연은 참 대단한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그 모습이 아주 멋지게 변한 바위 위에 앉아

산행의 기쁨을 한 번 더 맛보았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 같은 신선한 느낌으로...

 

 

 

 

 

 

어느 봄날,

신록은 짙었고 산에 사는 바람은 친절했으며

어울려 사는 햇살 또한 따사로웠으니 오늘 그들과 함께 한 나 또한 행복했다

 

머지않아 난 또다시 그대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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