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에서의 하루

2008. 7. 24. 22:26내 삶의 흔적들/가족

 

 

 

 

가평에서의 하루

 

 

 

 

 

 

1년만의 일이다.

여덟 남매의 가족 모임을 위해 이렇게 모이는 것은...

 

2008년 7월 19일,

가평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몹시도 가벼웠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 세기가 점점 강해지는 듯하다.

전날부터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결코 피해만 입히지 말고 그냥 소멸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간밤엔 쉴 새 없이 창문을 두드리는 예의 없는 소리 때문에

누구 짓인지를 확인 하느라 몇 번을 잠에서 깼고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특별한 아침을 맞은 몸 상태가 그리 가볍지가 않다.

 

가늘게 떠 있는 부은 눈을 깨우려 창문을 쳐다보니

창문엔 온통 고만고만한 빗방울들이 수도 없이 붙어 앉아

설 잠을 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준다.

 

아들 녀석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막히는 도로를 피해 경기도 광주의 퇴촌을 지나 양평대교를 건너고

유명산 자락을 굽이굽이 밟으며 청평으로 접어드니

차의 흐름이 한결 수월해 졌고 빗줄기도 좀 부드러워졌다.

 

낮 선 시선으로 주위를 산만하게 두리번거리며

앞서서 달리는 차의 꽁무니만 쫓아서 가다 보니 어느덧 가평이다.

혹시나 하고 열심히 찾았던 가평군청 입구를 찾으니

조바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평군청을 지나 어스름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목적지에 도착하니

출발한지 어언 3시간이 넘어 버렸다.

 

순간의 착각으로 몇 키로를 다시 돌아서 오기도 했지만

한 번도 쉬지 않고 빗길을 뚫고 온 탓에 아직도 정신은 몽롱한데

입구에 이미 도착하여 나를 반기는 차들을 보니 집사람 얼굴에도 화기가 돈다.

다들 무사히 도착해서 참 다행이다. 

 

 

  

 

 

 

먼저 도착한 누나 매형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뻐근한 허리를 펼 여유도 없이 소주 몇 잔을 연거푸 받아 마시니

몽롱하던 머리가 더 정신이 없다.

 

점심을 먹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알코올의 위력 때문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살며시 작은 방에 들어가 머리를 눕히니

큰 소리를 내며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오는 길에 만났던 그 빗방울...

갈 길 바쁜 시야를 가리며 훼방을 놓던 물방울인데

이렇듯 자리에 누워 편하게 들으니 그 느낌이 무척이나 다르다.

시시각각 변하는 여름날의 변덕스런  날씨처럼

 내 마음이 그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일희일비 하지말자는 나의 마음속 다짐도 생각나고...

 

어느 새 잠들었는지, 얼마나 잤는지,

떠들썩한 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먼저 도착한 식구들이

흥겨운 가락에 취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큰누나 큰 매형 둘째 누나 둘째 매형...

 

살며시 거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는 조용히 감상한다.

차례로 돌아가며 저마다의 기량을 발휘하니 더욱더 흥은 무르익어 가고

누나의 팔에 이끌려 진땀을 흘려가며 마지막 두 곡을 부르고 나서야

일차 노래방은 끝이 났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청중 같은 모습으로 지켜보던 집사람의 한마디에

내 어깨가 으쓱해 졌다.

 모두 가수 같다 나 어쩐다나...흠~ㅋㅋ

 

 

 

 

 

 

 

마당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도 여전히 굵은 빗줄기는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우산 하나를 받쳐 들고 카메라를 챙기고는 집 주위를 돌며

빗속에 잠긴 세상을 하나하나 담았다.

 

기왓장을 타고 내리는 넉넉한 물줄기가 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져서는

어린아이 피부 같은 땅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고

육중한 사람들의 무게와 흩날리는 빗방울들을 몸소 받으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있는 고즈넉한 정자의 모습은 의젓하기만 하다.

 

잠시 고개를 돌려 산 쪽을 바라보니 싸리나무 한 무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연약한 몸을 뒤척이며 쉴 새 없이 내리는 굵은 빗방울을 오롯이 맞고 있고

연보라 꽃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 시키기라도 하려는지

그 빗속에서도 진하게 우려진 향기로 나의 후각을 자극 한다

 

처음으로 맡아 본 싸리꽃 향기...

그 진한 그 향기가 지금도 퍼져오는 것 같다.

 

 

 

 

  

 

 

 

굵은 물방울을 매달고 있던 잣나무 잎들이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결에

그 구슬들을 모두 털어내더니 이내 다시 그 투명 구슬을 매달고 있다.

솔잎과 물방울...

참 잘 어울리는 자연의 파트너 같다.

 

건너편 산 아래까지 내려왔던 구름이 반겨주는 사림들을 만나지 못했는지

슬며시 산꼭대기로 줄행랑을 치고

앞개울을 흐르며 나즈막하게 재잘거리던 시골소녀 같던 냇물 소리도

이젠 한결 더 큰 소리를 내며 용감하게 지나간다.

꽤 많은 녀석들이 모여 그 힘을 과시하며 움직이는 게 틀림없다.

 

 

 

 

 

 

 

매운 고추를 잘게 썰어넣은 부침개를 즉석에서 먹어가며 고스톱을 쳤고

한 잔 술로 정을 나누고 기쁨과 즐거움들을 마셨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조카의 작은 분신을 지켜보며 즐거워했고

뒤뚱거리며 걸어가다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조카들의 근황과

학교 공부와 학원에 다니느라 정신없는 중학교 녀석들의 이야기며

얼마 전 주니어 배구 국가대표에 뽑힌 조카 녀석의 소식에 

모두들 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한 사람의 기쁨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각자의 모습이 다르고 사는 곳이 서로 다르듯이

우리의 생각들이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결코 틀리지는 않을거라는 확신을 가지며...

 

어느 새 내가 앉아있는 산 속으로도 어둠의 발자국이 서서히 걸어들어 온다

용케도 길을 잃지 않고 꼬부랑길을 찾아오더니 갑자기 그 발걸음이 빨라졌다.

익숙한 모습으로 찬 계속물에 발을 담그니 비로소 이 계곡은 침묵 속에 갇혔다.

그것은 또 새로운 빛을 내게 안겨준다.

 

모든 식구들이 둘러앉아  둘째 누나의 요리 솜씨 만끽했다.

여러 가지 음식을 하느라 공도 참 많이도 들인 것 같다.

예전부터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았던 터라 별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먼 곳에서 장을 봐 오느라 꽤 힘들었을 텐데...

거리상으로는 좀 먼 곳으로 초대하긴 했어도 그 만큼의 보람도 있는 것 같다.

 내내 앞치마를 두르고 챙겨주는 둘째누나의 모습이 예쁘다.

 

3년 전,

내가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아직 모든 것이 어수선한 상태였는데

오늘 다시 찾아 온, 나의 눈에 비친 이 곳 풍경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주말마다 먼 거리를 왕래하며 애쓴 둘째 누나, 매형의 노고 덕분이리라.

그렇게 애쓴 덕에 오늘 우리 식구들이 편히 하루를 묵어갈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늘,

 두 분이 좋아하고 공들인 이 집에서 좋은 꿈과 좋은 마음도 함께 가꾸며

건강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집사람과 큰 매형, 둘째 매형이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여름 밤 속에 빠져있다.

맥주 몇 병이 비워지는 동안에도 온전히 그 자리를 보전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꽤 깊은 이야기가 오가는 모양이다.

선뜻 끼어들기가 뭣해서 주위만 잠시 맴돌며

몇 장의 어두운 침묵만 카메라에 담았다.

 

이슬처럼 가늘어진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밤은 깊어가고

낮선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와 제법 시끄러워진 냇물 흐르는 소리가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시간들을 아쉬워하는 듯하다.

 

 

 

 

 

 

밝은 얼굴로 다정한 모습으로,

깊은 밤까지 함께 모였던 가족들의 목소리는 

짙은 어둠속에서도 이렇게 밝은 불빛처럼 빛나는데

고운 모습으로 함께 해야 할 두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

나는 잠시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본다.

 

크고 작은 그리움들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님의 넘치는 사랑이 오늘도 나를 촉촉하게 적셔 주신다.

 

 

 

 

 

 

내일 점심때가 되면 우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가 올 일 년 후를 기약하며 못 다한 이야기들과 그리움의 발자국만 남긴 채

우리가 지나왔던 그 길을 또 지나 갈 것이다.

아직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오해와 불신의 발자국들을 지우며...

 

건강한 모습으로 보게 될 내년을 기약하며

함께 했던 여덟 남매의 길지 않은 시간들을 마무리 한다.

 

묵묵히 마당 한 모퉁이에 서서

우리들의 다정한 모습과 기쁨의 목소리를 기록하며

변함없는 얼굴로 어둠을 밝혔던 저 환한 등불은

오늘 밤엔 또 무슨 꿈을 꿀까?

 

 

 

                                                                                              

                                 

2008.07.24..진.

남매계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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