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계

2007. 12. 16. 18:46내 삶의 흔적들/얘기

 

 

 

남매(男妹) 계

 

 

 

 

공주에 사는 큰 누나의 집에 다녀왔다

1년에 한 번 있는 8 남매의 계모임을 위해서였다

큰 누나는 나와 꼭 12년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나와는 띠 동갑인 셈이다

 

부모님은 1남 7녀를 남겨 두시고

50대 초 중반에 모두 내 곁을 떠나 가셨다

 

누나 네 명과 여동생 세 명..

그러니까 한 번 계모임을 주관 하면 다시 돌아오는데 만 꼭 9년이 걸린다

모임을 시작한지 벌써 9년째가 됐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가슴이 포근하기도 하다

 

공주 서울 청주 수원 의왕 삼척 울산 그리고 울산 

8 남매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다 보니 

1년이 가도 서로의 얼굴 보기가 힘들어서 협의 끝에 어렵게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다 보니 모임을 맞이하는 그 느낌이 덤덤할 수만은 없다

 

4건의 사고로 얼룩진 경부 고속도로를 지나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를 조금 지나니 목적지 톨게이트가 보인다

멀미가 심한 작은 녀석은 벌써 오래전에 뒷자리에다 먹은 걸 확인해 놓았고 집사람은 또 그것을 치우느라 부산하다

도착해서 치우자고 한마디 하고는 조용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준다

 

이그..

닮을 걸 닮아야지

멀미 하는 건 우째 지 애비를 그렇게도 꼭 닮았는지...

하여간 너도 살면서 차 때문에 고생은 좀 하겠다

녀석...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잘 키워진 화초들이다

어떤 녀석은 이 겨울에도 연 분홍의 꽃을 피웠고

어떤 녀석들은 추위와는 상관없이 화사하고 청초한 얼굴로 나를 반겨 준다

먼저 도착한 누나들은 이미 옛 추억에 묻혀 얼굴이 붉어졌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나의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 와중에도 나의 시선은 푸짐한 음식이 차려진 커다란 상 위를 향하고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많은 음식이 허기진 배를 자극한다

 

말도 하는 둥 마는 둥,

 위대한(?)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야 눈이 밝아졌다

건네주는 쐬주를 연거푸 몇 잔 들이키고는 소화를 시킨다는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와서

작은 녀석이 친 사고를 마무리 하고 하늘을 쳐다보니 흐린 겨울 하늘의 작은 모퉁이, 그 어둠 속에서

옛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8남매를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그 하늘은 여전히 거기에 있고

우리의 8 남매 또한 여기에 있으나

두 분의 모습만은 찾을 수 없음이 나를 슬프게 했다.

갑자기 찬바람이 마당의 가랑잎들을 한 곳으로 몰며 지나갔다

 

바깥의 겨울 날씨와는 다르게 방안의 공기는 꼭 여름 같이 훈훈해져서 창밖에 까지 전해져 나온다

저마다의 사랑스럽고  맑은 체온들이 모여서 그런가 보다

모두의 시간들도 함께 모여 있다

어린 시절의 시간과 힘들었을 때의 시간

그리고 행복했을 때의 그 시간들이...

 

이 시간들은 이제 또 하나의 다른 시간이 되어 우리 8 남매의 가슴속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훗날, 지금의 이 시간들을 불러내어 우리만의 대화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우리들의 밤은 뜬 눈으로 흘러갔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맞은 다음 날 아침은 새벽부터 내린 겨울비 속에서도 우리의 가슴을 춥지않게 적셔 주었다

 

누나 그리고 동생들아?

   부디 건강하고 언제 까지나 행복하기를...

 

                                                                                                

                                                                         

2007.12.16.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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