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을 밟던 날

2008. 4. 18. 21:44내 삶의 흔적들/얘기

 

 

꽃눈을 밟던 날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의왕시청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주차장 옆으로 울타리처럼 심어놓은 벚꽃이 내 시선을 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풍경이 내 발걸음을 부른다

거기엔 이미 많은 차들이 줄을 맞춰 앉아있고..

 

시청 옆으로 난 산책로에는 이제 막 새싹이 돋아 오르는 나뭇잎과

이름 모를 풀잎들이 살며시 머리를 내 밀고 있다

그 대견스러움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바람이 그 연두 빛 잎새들을 어루만질 때마다

꽃눈은 분홍의 함박눈이 되어 쏟아지고 꿈을 머금은 채 하염없는 비행을 하는 중이다

 

 

 

 

 

 

 

 

 

 

 

 

그 길옆의 벤치에는

상큼한 오후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고

잠시나마 같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자리를 찾아봐도

나를 기다리는 빈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춥지도 않은데 눈이 내리고 있다

벌써 바닥은 온통 분홍의 꽃눈으로 가득하고

밟으면 터질 것 같은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기가 조심스럽다

녹지 않는 눈이 내 머리위에도 내려 앉는다

모른체 발걸음을 옮겼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과 애정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운 손으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연인들의 모습이 예쁘다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어린 아이의 밝은 목소리가

투명한 공기에 반사되는 메아리처럼 명랑하다

마치 종달새의 지저귐 같이...

 

그네를 타는 아이의 모습을 조심스레 지켜보는 아이엄마의 얼굴은

못 다한 사랑을 뿜어내듯 벅찬 사랑으로 가득하고

입가에 띄는 여린 미소에서 봄볕의 여유로움이 배어 나온다

 

높이 올라갔던 그네가 땅에 가까워 질 때마다

함박눈처럼 날리는 한 무리의 꽃잎이 떼지어 날아 오르는 나비처럼 화사하게 땅을 박차고 오른다

그것을 보는 아이의 눈은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다

 

 

 

 

 

 

 

조금 전까지 작은 목소리로 소근 대던 연인들이 앉았던 반석..

팔짱을 끼고 떠난 그들의 자리에는 이미 그들의 체온을 탐내기라도 하듯

꽃눈 여럿이 다투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아직도 따뜻하나 보다

 

나도 저 반석위에 누군가와 함께 앉아 있고 싶어졌다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더 좋겠지만

그 때 그 시간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의 대화 속에 끼지도 않았는데 괜히 눈치가 보인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담으려고 하니 왠지 좀 쑥스럽기도 하고...

 

 

 

 

 

 

아직도 화기애애한 표정과

톤이 높은 낭랑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돌아 나오던 길에 잘 꾸며진 오솔길을 만났다

 

 언제였던가...

 많은 시간 동안 나와 친숙했던 그 것.

 

고독에 익숙한 발걸음으로

통나무 징검다리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나의 무게를 나눠주며...

 

 

그토록 뜨겁고 열렬했던 며칠간의 시간들...

이제 그들이 소풍을 마치고 모두 돌아가는 날,

나는 또 다시 다음 봄날을 기다리며 이 시간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이룰 수 있는 그리움 하나 가슴에 품으며...

 

 

 

 봄아...가지마라.

2008.04.18..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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