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21. 21:25ㆍ내 삶의 흔적들/얘기
어느 봄날에
그 길었던 겨울의 채취가 그리운건지,
말없이 지나가는 짧은 계절이 야속한 건지...
이미 뻐꾸기 날개에도 땀이 맺혀오건만
난 아직도 흰 눈의 품안에만 묻혀 있는 건가?
봄 날,
한 낮의 고운 햇살에 노란 날개 펼쳐놓고
천근같은 눈꺼풀을 원망하며 꾸벅꾸벅 조는 병아리처럼 자꾸만 졸음이 쏟아진다
뭘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누가 날 때렸나?
몸은 오지게 맞은 것 같이 여기저기 아파오고
정신까지 몽롱하니 이거 큰 병이라도 든게 분명하다
나만 이런 건가?
집사람한테 말해서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달라고 해 볼까?
일요일인 어제,
하루 종일 구들장만 지고 있었으니 바깥 공기는 잘 살고 있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깜빡 졸기를 수차례...
마누라가 옆구리 쿡쿡 찌르며
날씨 쥑인다(?)며 나들이나 가자고 난리를 치는데도 못 들은 척 뒤척였더니만
저녁엔 고향에서 가지고 온 김치에 식은 밥 한 공기 떡~하니 안방으로 밀어 놓고는
거실에서 큰 녀석이랑 둘이서 히히덕거리며 삼겹살을 굽고 있다
다이어트 한다면서 그런 건 안 먹어도 될 텐데...
냄새라도 나지 않아야 모른 체 하지 참...
큰 녀석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잠깐 나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아마도 큰 녀석의 입을 막았나 보다
에이~~
좀 참고 기다려 보자.
작은 녀석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설마 다 먹어 치우기나 하려고?
작은 녀석은 아침을 라면으로 대충 때우더니
하루 종일 뭘 하며 돌아다니는지 들어오지도 않는다
한 참을 지나자 집안 공기를 바꾸는 느낌이 든다
햇볕에 잘 살균된 뽀송뽀송한 바람이 집안 가득 채워진다.
자는 척 하고 있어도 느낄 건 다 느끼고 있다는 걸 알까?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에야 들어 온 작은 녀석 덕분에
식어빠진 삼겹살 몇 조각을 구경했다
햐~맛있다.
내일 쯤,
좀 일찍 들어와서 집사람이랑 맥주나 한 잔 같이 해야겠다
그리고 이 한마디도 잊지 말아야지...
여보?
있잖아~거시기
보약 한 첩 좀 해 주면 안 될까?
어느 피곤한 봄날에...
2008.04.21..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