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보내며

2008. 3. 18. 18:10내 삶의 흔적들/얘기

 

 

 

 

 

 겨울을 보내며

 

 

 

 

3월의 중순,

엊그제 그 추웠던 기온은 어디로 가고

한 낮엔 벌써 송골송골 이마에 땀방울까지 맺히게 한다

 

오늘은 퇴근을 하고 정형 외과에 들렀다

돌아눕지도 못 할 정도로 오른쪽 가슴이 욱신거리기 때문이다

일전에 그 부위가 한 번 골절 된 적이 있었기에 혹시나 또 그렇지나 않은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금이 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은 쉬었지만 아직도 밀려오는 통증이 영 꺼림직 하다

 

지난 토요일,

겨울의 아쉬움을 달래보자는 전화를 받고는 망설일 틈도 없이 따라 나섰다

8명의 사람들이 차 두대에 나눠타고는 목적지인 태백의 하이원 스키장으로 향했다

그 곳은 고지대라서 아직도 기온이 낮기 때문에 마지막 겨울을 즐기고 눈 구경도 할 겸 해서였다

 

오후 2시쯤 출발하여 저녁 무렵 그 곳에 도착했다

겨우내 그 많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운건지, 발길 뜸한 사람들의 체온이 그리운건지

산 그림자 서넛이 길게 목을 빼고는 마을 한 가운데까지 이미 마실을 왔다

 

높은 산 양지쪽에는 따사로운 햇살에 놀란 눈들이 제 모습을 감추려는 듯

하나 둘 작은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우리를 마중 나온 바람조차도

그 겨울의 용맹한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풀이 죽어서 우리를 맞는다

 

 

 

 

 

 

 

 

저녁을 먹은 후,

 바쁘게 준비하여 정상을 향해 올라가노라니

군데군데 환한 불빛이 깊은 산중을 처량하게 지키고 있다

왠지 고독한 파수꾼처럼 보인다

 

 처음 접해보는 야간 스키장의 정경이 이채롭다

 

깊은 어둠을 이고 있는 작달막한 키의 이름 모를 나무들.

잠들 시간에 방문한 이방인을 나무라듯 거친 목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찾아 온 사람들을 보호하려는듯 바닦만 뚫어져라 응시하는 어둠과 대비되는 높은 촉광의 네온등

그리고 휘청거리는 곤돌라...

 

 바닦은 온통,

 구슬 같기도 하고 보석 같기도 한 작은 일갱이들이

밝은 빛을 머금고는, 내 시선이 머무는곳 마다 유난히도 반짝거리며 빛난다

마치 보석 위를 밟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참 좋다

 

 

 

 

  

 

 

 

한낮에 다녀간 열이 많은 햇살 때문인지 슬로프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바닥은 녹았다가 언 듯, 작은 알갱이의 얼음들로 덮여있고

그 알갱이들 마저 군데군데 뭉쳐 있어서 헤치고 내려가기가 만만치 않다

4개의 슬로프 중 하나만 좀 나을 뿐...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무사히 타는가 싶더니 제일 좋지 않은 슬로프를 내려오다가

쌓여있는 눈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가슴에 전해오는 통증이 있었지만 그리 심한 것 같지가 않아 정해진 시간을 채우려고 열심히 탔다

 

보드를 타는 사람들 한 무리가 무슨 시험을 치르는지 줄을 맞춰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과

자신의 모든 실력을 발휘 하려는듯 진지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사람들이 모습이 열정적으로 보인다

 

그 후로도 여러 번 넘어지기를 반복하고 밤 10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오니

별로 느끼지 못했던 가슴의 통증이 심한 피로감과 함께 한꺼번에 몰려온다

하룻 밤 자고나면 괜찮아지겠지...

 

 

 

 

 

 

 

밤 11시,

정리를 마친 사람들이 12시에 돌아 온다며 모두들 카지노에 몰려갔다

카지노라는 곳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곳의 분위기도 한 번 느껴보겠다며...

 

두 명이 남아 큰 방을 지키고 있자니 왠지 고즈넉한 느낌이 든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다 문득 환한 눈밭이 눈에 들어온다

 

 휴대폰을 열어 외박을 허락한 집사람에게 짤막한 편지를 썼다

 

'스산한 바람이 창가를 비껴가고

어둠만이 오롯이 깊어 가는 산중에

아직도 서러운 흰 눈만

아쉬운 듯 지친 세상을 밝히고 있소'

 

애타게 바라지는 않았지만 답장이라도 해 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 다음날도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통증도 잊은 채 상태가 좋은 슬로프를 골라 줄기차게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다행히 더 이상 통증을 악화시키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마지막 가는 태백의 겨울을 느끼고 돌아왔다

비록, 멍애 같은 통증은 안고 돌아왔지만 그렇기에 많은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3월 중순의 겨울을 느꼈던 태백에서의 하루는...

 

 

 

                                                                                                                                    

하이원에서 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며...

2008.03.17..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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