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보내는 편지

2009. 5. 29. 18:04내 삶의 흔적들/얘기

 

 

 

 

 

하늘로 보내는 편지

 

 

 

 

 

봄은 어느 덧 익을대로 무르익어 이미 여름 흉내를 내고 있네요.

얇게 걸친 반 팔 옷 속으로도 그 뜨거움이 점점 스며들고

산과 들에는 벌써 초록의 고운 옷들이 풍성해져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지난 토요일에 어느 결혼식장에 다녀왔어요.

사랑스런 바람이 열린 창 안으로 손을 뻗어 제 얼굴을 어루만지고

살금살금 배어나오는 땀방울까지 부드럽게 식혀주는 한가한 토요일 정오였어요.

 

존경하는 분의 자제가 결혼을 하는 날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왔습니다.

엊그제 대학생이던 학생이 언제 그렇게 성숙한 여인으로 변했는지...

지극한 마음으로 행복하길 바라며 또 빌어주고 왔습니다.

 

그 좋은 날, 

전 거기서도 주체 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혼났습니다.

잔잔한 분위기와 조명 때문에 들키진 않았지만 왠지 쑥스럽고 묘한 감정이 살아나 한동안 정말 힘들었네요.

 

결혼을 하는 신랑신부의 그 고운 자태와 언행들.

그들을 보내고 또 맞이하는 양가 부모님들의 잔잔한 미소와

그 속에 풍기는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환한 표정들이 정말 부러웠거든요.

 

 제가 경험하지 못 한 것에 대한 반항일지, 아니면 단순한 부러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축하를 하기위해 간 그런 곳에서 눈물을 보인다는 게 스스로 좀 창피하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니 응어리져 있던 가슴이 풀리듯 가슴 한구석은 비 온 뒤의 맑은 하늘처럼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은 괜찮긴 했습니다.

 

그런 좋은 자리에서..

왜 그럴 때 꼭 엄마가 내 눈 속에 나타나는지 모르겠어요.

잔잔하던 제 가슴에 정말로 큰 파도로 다가오시니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감정을 추체할 수 없어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니 큰 일 입니다.

다음번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 때 또 그러면 어쩌죠?

 

 

엄마. 

그 결혼식이 있던 날 아침에 대통령을 지내셨던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오늘은 그분을 완전한 세상으로 보내드리는 날 입니다.

온 나라가 침묵 속에 빠져있고 공기마저 무겁게 불어 오네요.

 

그리 길지도 않은 이승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먼 곳으로 보내드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리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이젠 근심걱정이 살지 못하는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기를 빌어드렸습니다.

 

참! 지금 쯤 이면 엄마는 그분과 함께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퇴임 후 1년여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나 봅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그보다 더한 사림들도 아직까지 고개를 쳐들고 살아있는데

무엇이 그분을 그리도 빨리 그곳으로 인도했는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살아서 모든것을 풀고 마무리 하셨어야 했는데... 

 

혹시라도 그분을 만나게 되면 제 대신 위로라도 좀 해 주세요.

이마에는, 생각이 많아서 생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긴 주름이 나 있는 분이거든요.

엄마처럼 그분도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가셨답니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이겨내지 못 한 것에 대해서는 꾸중도 좀 해 주셔야 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에 대해서는 두 분이 참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네요.

물론 하늘나라로 가신 방법은 두 분이 많이 다르지만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늘 그렇게 큰 고통을 동반 하는가 봅니다.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겠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결코 잊혀 지지는 않을 겁니다.

엄마가 제 가슴 속에서 그러하듯 한동안 그분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큰 나무로 서 계실 테니까요.

 

 

엄마!

불러보고 싶어도 입안에서만 맴돌던 엄마라는 그 말...

듣기만 해도 눈물짓게 하던 그 말...

참 오래간만에 불러 보네요.

어린아이 같죠?

 

쉰 중반에 제 곁을 떠나셨으니 제 가슴 속에는 늘 그때의 모습 뿐 이네요.

더 늙지도 더 아프지도 않은 그 모습 그대로...

그러고 보니 가신지도 벌써 26년이 흘렀네요.

 

참 세월이 빠르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장가보낸다고 하시던 그 아들이 어느 새 또 아들을 키워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시켰으니 말이죠.

그렇게 보고싶어 하시던 엄마의 그 손자요.

  그 녀석이 오늘 2박 3일의 "해병대 챌린저" 라는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예요.

아마도 고생은 좀 했을것 같은데 보내 온 문자 메세지는 그래도 좀 힘차 보여서 좋네요.

부디 삶의 의지와 건강한 정신을 듬뿍 안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별일없이 돌아와 준 녀석을 힘껏 안아주려고 합니다.

아주 사랑스럽게요.

 

다 큰 어른이 엄마라 부르니까 이상한가요?

제 마음속의 엄마 모습은 26년 전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고

22살의 아들이 어머니라고 부르기에는 좀 어린나이였거든요.

그러니까 전혀 이상 할 것이 없는 거죠? 

고마워요.

늘 그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셔서...

 

이렇게 5월은 또 지나가고 있습니다.

4월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는데 이번에 함께했던 5월도 참 잔인한 달이네요.

여러 가지로 제 몸과 가슴에도 큰 멍을 남겼으니까요.

 

주말이 지나가면 제가 태어났던 그 날이 가까워집니다.

저를 낳고 그렇게도 좋아하셨던 당신 아들의 생일이요.

그 날을 계기로 제 마음속에 남아있는 허잡한 마음들과 건설적이지 못 한 여러 생각들이 모두 정리됐으면 좋겠네요.

두 달여의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 이젠 좀 더 꿋꿋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지혜와 희망을 주세요.

좋은 생각만 하고 살 수 있게 용기도 좀 주시구요.

 

이제 서산으로 해가 기울고 있습니다.

오늘도 제게 주어진 하루에 만족하며 일상을 정리하겠습니다.

또 편지 드릴게요.

 

안녕히..잘 계세요, 엄마..^^

 

 

 

 

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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