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i Cherie를 들으며

2011. 8. 16. 23:22내 삶의 흔적들/얘기

 

 

 

 

Merci Cherie를 들으며

 

 

 

 

 

 

나는 지금 Merci Cherie를 듣고 있다.

이 음악 속에는 내 어릴 적 아련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리듬 하나하나에 담겨진 풋내 나는 시간들이 싱그러운 봄비처럼 촉촉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지나간 시간 중에서도 한 번 만 꼭 가보고 싶은 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별이 빛나는 밤에" 를 애청하던 그때 그 시절일 것이다.

하룻밤으로 압축되어 그려지는 잊혀 지지 않는 그 시간들...

 

사춘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 외로움을 무척이나 많이 타던 때 같기도 하다.

눈은 왜 쌍꺼풀도 없고 작은지, 코는 왜 이렇게 생겼는지, 피부는 왜 이렇게 검은지...

내 마음이나 내 생각속에 살고있는 내면의 모습 보다는 거울에 비치는 표면적인 것들에게 사로잡혀 늘 고민하고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매우 혼란했던, 앞이 보이지 않는 절벽 끝에 서서 아득한 세상을 보는 기분이랄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많은 외로움을 가슴에 안고 지내던 화약과도 같았던 시기..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또 누군가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하던 순수했던 순간들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향해 썼던 부치지 못 한 편지들..

늦은 밤까지 매달려서는 썻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기를 수 십 번.

마음으로 그려가던 그 연애편지는 Merci Cherie의 끝자락에 반복기호처럼 붙어서는 수도 없이 되풀이 되고

그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붙이지 못 한 아쉬움으로 아무도 모르는 작은 상처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도 했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내 방에는 그렇게 해서 생긴 상처들로 늘 포화상태였다.

 

라디오 속으로 들어가 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하염없이 누군가의 인기척을 기다리는 것 또한 내 가슴을 설레게 해서 좋았고

허기조차 잊은 채 얇은 배를 깔고 엎드려서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연습장에 형체가 오묘한 내 마음들을 그려 넣고는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무수한 생각의 퍼즐들을 맞춰가며 그 위에 나만의 세상을 색칠해 가던, 고독에 익숙한 시간들이 좋았다.

 

Merci Cherie의 감미로움이 엔딩으로 작별을 고할 때 쯤이면 작은 방을 비추던 백열등도 달아오른 몸을 주체할 수 없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그 숨소리 너머에 그려진, 완성되지 않은 내 세상을 들춰보며 서운함과 아쉬움으로 잠 못 들던 나와 내 자신의 긴 대화들도 좋았다.

 

깊은 어둠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침묵과 사춘기의 그 형언할 수 없는 폭풍들이 뒤섞인 알 수 없는 변성기들.

잠들지 못 해 뒤척이는 어깨 너머로 언뜻언뜻 느껴지는, 갈망하지만 결코 완성되지 않은 이성을 향한 진한 동경들.

굳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했던 착한 친구들.

그리고 꿈처럼 내 몸을 휘감아 도는 저 Merci Cherie의 감미로운 미소들...

 

그래, 그랬었다.

그게 사춘기를 보내는 나였다.

그 고요함이 좋았고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나를 나만의 생각 속에 밀어 넣어 위로해 주던 시간이었다.

외로움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끝내 힘들어하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순간처럼 스쳐가는 이 기분들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고 바위에 새겨진 조각처럼

여전히 내 맘 속 깊은 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리움 같은 잔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사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때 그 폭풍 같은 시절을 보낸 청춘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아주 소소한 일상이었을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고 보니 벌써 30여 년이 지나갔다.

친구들을 만나고 온 후엔 더욱 그 시절이 생각난다.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아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즐거운 친구들...

벌써 그 친구들이 보고 싶다.

 

Merci Cherie가 또 한 번의 외출을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이 곡이 끝나면 잠시 동안 함께했던 오늘의 시간여행도 끝날 것이다.

멀리서 들려오던 멍멍이 소리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장마보다 더 긴 장마가 아직도 가지 못하고 유난히 질척거리는 이 여름.

조금 전까지 작은 나뭇가지 어딘가에서 목청 높여 사랑을 노래하던 가녀린 매미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밤인 듯 낮인 듯, 시간을 초월한 애끓는 소리를 내더니 아마도 그렇게 그리던 님을 만났나 보다

 

잠시 체력을 보강한 검은 구름이 또 몰려왔는지

여린 나뭇가지에, 설익은 내 마음 위에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내리고 있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201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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