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에게 보내는 편지..1

2017. 4. 21. 20:59내 삶의 흔적들/얘기

 

 

 

  

사랑하는 아들 재영이에게

 

 

네가 입대할 때 길가에 서서 우리에게 화사한 미소를 보내던 그 많은 꽃들...

그동안 몇 번의 비가 내렸고 또 몇 번의 강한 바람과 함께 그 꽃들도 떨어져 눈처럼 쌓이더니 그것도 이젠 거의 다 녹고...

네가 집을 떠나니 봄도 너를 따라 일찍 떠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짧디 짧은 봄이 올해엔 더욱 짧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살지않을 것 같던, 무채색으로 덮여있던 산에도 하루가 다르게 초록이 짙어져 가고

한낮의 태양은 때때로 여름 흉내를 내며 서둘러 창문을 열게 하는 이때..

낯선 곳에서 매일매일 흐르는 땀과 함께하는 그곳 생활은 어떤지 매우 궁금하구나

 

네가 입대한 지 이제 11일째인데 시간이 엄청 많이 흘러간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이제 막 돋아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여린 새싹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막 입대한 울 아들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 하구나

그렇지만 지금 돋아나고 있는 연약한 잎들이 점 점 짙어지고 키도 지금의 두 배, 아니 세 배쯤 더 자랄 때 쯤이면

울 아들의 몸과 마음과 정신력도 그만큼,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크게 자라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하다

 

신교대 정문을 들어갈 때까지 담담하게 행동했지만,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반도 못 먹는 걸 보니 아빠 마음이 먹먹하더구나

시간이 다가올수록 얼굴에 긴장한 빛은 더욱 역력하고...

입소식이 끝나고 연병장을 돌아 들어갈 때의 상기된 모습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쿵쾅거리던 아빠의 가슴속.. 그  알 수 없는 굉음과 함께...

 

아침저녁 기온차가 커서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먹는 건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고 있는지...

몸은 어디 아픈덴 없는지...

오래 서 있으면 아프다던 발바닥은 좀 어떤지...

피부는 어떤 상태인지...

너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게 다 궁금하구나

이번 주말쯤 전화는 올 거라고 하던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들이 참 길~~~~~ 것 같다

 

네가 입대하고부터 청성 신교대 카페에 가입하고 새롭게 올라오는 소식들을 매일 체크하고 있다

남들은 교회에서, 성당에서, 마하사에서 아들 사진 봤다고 좋아라 하는데, 아빤 눈이 빠져라 찾아봐도 울 아들은 안보이더니만

그저께 처음으로 견장수여식 사진과 함께 소대별로 찍은 사진이 올라와서 입대 후 처음으로 네 얼굴을 보게 되었다

하얗던 얼굴이며 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많이 그을었더구나

그렇게 찾아 헤맸던 널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ㅎㅎ

엄마도 너의 군복 입고 경례하는 사진을 보시더니 아주 잘 나왔다고 함박웃음 지으며 좋아하시더라

앞으로는 사진 촬영 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해서 자주 얼굴 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알겠지? ㅎㅎ

 

참.. 엄마는 네가 없으니 엄청 한가해서 좋다고 하더라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빨랫감들이 없어서 그렇고 먹을 거 전혀 신경 안 써도 되니 그렇고...ㅎㅎㅎ

아마도 늘 옆에서 느끼던 네 체온을 느낄 수 없어서 몹시 허전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겠지만...

그래서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빠 마음도 좀 가라앉는구나

 

모든 게 다 생소하게 다가 올 신병교육대 생활들...

힘들겠지만, 늘 적극적으로 헤쳐 나가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

소대원들과도 잘 지내고 생활관에서도 힘든 것들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솔선수범하는 아들이 됐으면 좋겠다

 

네가 떠나고 없는 집은 평온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은 말고...

형도 열심히 학교 다니고 시험 준비도 열심히 하고.. 엄마도 아빠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렇게 지낸다

변한 게 있다면, 함께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네가 없다는 것 만 빼면...

모두들 너의 안전과 건강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고 훈련 잘 받고 잘 지내길 바랄 게~

 

어제는 퇴근해 집에 갔더니 네가 입고 갔던 옷들과 소지품들이 도착했더구나

집 나갔던 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고...

엄청 큰 박스라서 혹시 그 속에 네가 들어있나 하고 열어봤더니 그건 아니고..ㅎㅎ

편지라도 몇 장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엄청 섭섭했다, 이눔아...ㅠㅠ

 

아들아~

최선을 다하되 자만하진 말고, 아프지 말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스스로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참는 것도 더 배우고 지구력과 체력도 많이 키우면서...

이제 넌 진정한 사나이로 거듭나는 거야, 알았지?

 

오늘은 4월 21일 금요일..

신교대로 보내는 인터넷 편지는 오늘 15시부터 허용이 되었다

아마도 네가 이 편지를 받는 날은 4월 24일 월요일이겠구나, 그날부터 편지를 불출해 주신다고 했으니...

그 시간이면 훈련을 마치고 꿀 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을 테고...

 

그날은 너의 21번째 생일인데 근사한 생일 축하를 못 해 줘서 엄마 아빠가 많이 섭섭할 것 같다

네 형이 입대했을 때 보니 생일을 전후해서 전화를 하게 해 주던데.. 그 부대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네

아니면 생활관에서 케이크 촛불이라도 끄게 해 주면 좋으련만...

이것도 저것도 없으면 이 편지를 생일 선물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읽어주면 되지 뭐...ㅎㅎ

암튼.. 그날이 어떤 모양으로 지나가던지 너무 섭섭해하진 말고 즐겁게 보내길 바란다

넌 원래 시크하잖냐~ㅎㅎ

 

아들~

어제는 제식 훈련을 받았던데 오늘은 무슨 훈련을 받았을까?

암튼 훈련받느라 수고 많았다, 그리고 고생했다

잘 쉬고.. 매일매일 좋은 꿈 꾸길 바라고.. 또 편지할 게~

사랑한다 울 아들...^^

 

 

2017.04.21.

 

너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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