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8. 09:57ㆍ내 삶의 흔적들/얘기
오늘 아침에도 나는 반짝이는 얼굴로 나의 체온을 기다리는 까만 구두를 신고 기분 좋게 세상 속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은 회사 창립기념일이다
여름 내내 반팔 셔츠만 입고 출근하다가 오늘은 긴 팔 셔츠로 갈아입었고 재킷도 새로 꺼냈다
기념행사를 핑계로... 마침내 짝을 찾은 한 짝의 옷도 다정해 보인다
거의 일주일을 빼먹지 않고 출근 도장을 찍던 비도 그쳤다
오래간만에 아침을 비추는 햇살은 유난히도 투명하고
뭉게구름 사이로 보이는 가을 하늘은 특유의 푸른빛이 청명하다
백로(白露)... 하얀 이슬이 내린다는 초가을의 절기
그러고 보니 며칠 사이에 기온의 변화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창문 앞에서 여름을 예찬하던 저 푸르던 잎들도 가을맞이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뜨겁던 여름을 함께 한 나의 구두도 이젠 좀 쉬도록 해야겠다
그동안 쉬고 있던 얼굴도 좀 볼 수 있도록...
막 결혼해서 차린 신접살림은 정말 보잘것 없었다, 두 사람의 열정 외에는...
결혼하기 전에 한 번도 음식을 해 본 경험이 없었던 집사람은 한 달 내내 계란국만 맛있게(?) 끓여 주었지...ㅎㅎ
설익은 밥은 애교에 불과했는데...
벌써 16년째다
집사람이 출근하는 나를 위해 구두를 닦아 준 것이...
아침마다 정성 들여 닦아 놓은 구두를 신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구두 닦는 실력도 시원찮았고 며칠 저러다 말겠지 했지만
그것이 어언 16년을 맞았다
내 간이 얼마나 부었는지 그 고마움을 가끔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적도 있지만
오늘은 새삼 그 고마움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2007년의 10월이 오면, 16년 전에 맞이했던 결혼기념일도 챙겨보고
처음으로 같은 방에서 떨리는 아침을 맞았던 그때의 모습들을 다시 한번 느껴 봐야겠다
가을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품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