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고치

2007. 10. 24. 19:11내 삶의 흔적들/얘기

 

 


 

누에 고치

 

 

 


 

올해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꽤 많은 곤충들을 지켜보며 생활해 왔다

순전히 작은 녀석의 취미활동에 의해서 너 댓 마리의 장수풍뎅이와 어릴 때 보고는 구경도 못해봤던 누에까지...

참 취미도 다양하다

 

암컷 장수풍뎅이는 장순이라 부르고 수컷은 장돌이라 불렀다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뒤집어져서 허우적거리면 재빨리 바로 세워주기를 수백 번

아침부터 잠 잘 때까지 녀석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주식인 젤리를 원 없이 실컷 먹으며 쾌적한 환경에서 제 수명을 다하고 갔다

처음엔 죽었다며 슬퍼하더니 수명이 짧아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덤덤하게 묻어주고 왔다

 

그리고 한동안 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저녁에 퇴근을 해서 보니까

꼬물꼬물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

헉...!

하나 둘 셋...여덟 마리...

누에를 또 들여놨다

어디서 구해 왔냐고 했더니 뽑기 하는데서 누에를 뽑아서 가져 왔단다

이 도시에서 그 누에를 어떻게 키우라고...

갑자기 이런 것 까지 이용하는 얄팍한  어른들의 상술에 씁쓸함이 스쳐간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나...

뽕잎을 퍼 나르려면 고생깨나 하게 생겼으니

그동안 잘 먹지도 못했는지 홀쭉해진 누에를 보니 측은한 생각이 앞선다

 

작은 녀석과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 나선 뽕나무

집 주변에 있을만한 곳을 찾아 꽤 많은 발품을 팔고서야 밭두렁 사이에서 겨우 찾아냈다

그러나 거기서 얻은 건 겨우 스물 댓 장의 뽕잎 뿐, 그리고도 한참을 돌아 다녔나 보다

 

그런데 벌써 잎이 시들고 억새서 이걸 먹기나 하려는지...

그동안 굶주렸을 녀석들을 위해서 우여곡절 끝에 따온 뽕잎을 큰 인심이라도 쓰듯 듬뿍 넣어 주었더니

먹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금새 다 먹어 버린다

 

그렇게 씨름하듯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저께 아침.

잘 자고 일어났는지 보려고 방문을 열어보니 한 녀석이 하얗게 고치를 틀었다

너무도 신기해서 자고 있는 막내 녀석을 깨웠더니 동그란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척이나 신기 해 한다

세상의 이치란 그런 건가 보다

먹을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알고는 자기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지...

 

오늘까지 네 마리 누에고치로 변신했다

앞으로 남아있는 녀석들 모두가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으로 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아니,

그 포근하고  아름답고 흰 눈을 닮은 예쁜 집에서 그들만의 꿈을 꿀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어느 가을날 세상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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