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에 대하여

2007. 12. 11. 09:02내 삶의 흔적들/얘기

 

 

 


정체성에 대하여

 

 

 

 

얼마 전 월례 예배를 드리러 잠실로 출근하다가

수서 4거리를 막 지나면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서울 도심에서..키 큰 굴뚝위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채롭다

지역난방공사의 굴뚝이다

 

난 교회에 나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예배에는 빠짐없이  참석한다

 

 

지나 온 나의 20대 초반은 그야말로 황량한 벌판이었다

그건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기 때문에 찾아 온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 시작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머리속에 가득했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고민들.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방황했던 그 많은 시간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교회였다

그러나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하고 말았다

도무지 내 생각 속에 그분이 들어와 주시질 않아서다

그렇게라도 의지하고 싶었으나 나를 일으켜주질 못했다

그건 순전히 내 마음을 열지 못해서였다

 

신이 있다면 그리고 항상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왜 이 세상에 그토록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야만 하는지 와

그렇게 나쁜 짓들을 하고도 어떻게 어엿한 행세를 하며 잘 만 사는지.

끝없는 의문만 내 머리 속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뒤 갑자기 성당 앞을 지나다가 그 속이 궁금했다

무슨 일 때문에 가는 길이었지만 나는 한참을 그 속에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취방 근처의 작은 성당엘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와는 다른 분위기와 마리아의 그 넉넉한 미소가 좋아서 교리도 배우며 즐겁게 보내길 6개월 여...

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전, 몇 주 째 성당엘 나가지 못했던 관계로 아침도 먹지 못하고

일찌감치 성당에 갔는데 그날은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앞쪽의 빈자리를 찾아 앉아서 열심히 신부님 말씀을 듣고 있는데

아까부터 자꾸 성당 신축 헌금 얘기를 말씀 중간 중간에 하셨다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장난기가 발동해서 저 분이 몇 번이나 그 말씀을 하시는지 세어 보기로 했다

그때부터는 그분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오직 헌금 내라는 말씀 만 내 귀속을 뚫고 들어왔다

무려 22번...

그 다음 날부터 나는 그 성당엘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만 갈 수 있는 조그마한 절에 다니며 빈 생각 속에 고요함을 채우고 있을 때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옛날에 다니던 그 성당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성당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리석으로 단장한 그 성당은 예전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육중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마도 나 같은 사이비 신자는 그 성당에 더 이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다니던 그 절에도 결국 발길을 끊었다

 

결국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회사로 오시는 목사님 덕분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종종 성경도 읽으며...

 

또한 나를 굽어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보고 있노라면 내 어머니 같은 포근함이 느껴져서 좋다

그리고 고즈넉한 산사에 들러 처마 끝에 거꾸로 서서 인간사를 굽어보는 풍경 소리를 들으면

언제라도 나의 마음은 고요해 진다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 선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는지

지금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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