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2008. 2. 23. 11:10내 삶의 흔적들/얘기

 

 

 

 

정월 대보름

 

 

 

 

어릴 적 엔 그랬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좋은 깡통을 주으러 다녔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이웃 동네에까지 발걸음을 옮겨 크고 상태가 괜찮은 깡통을 찾으러 다녔다

 

그리고는 큰 못으로 깡통 곳곳에 구멍을 냈다

깡통을 돌릴 때 바람이 잘 들어와 나무가 잘 타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나이에 사실은 그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보름 날,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면

그렇게 준비한 깡통에 바짝마른 나뭇가지를 꺾어 넣고

종이에 불을 붙여 쏘시개로 넣고는 전화 줄로 연결된 깡통을 빙글빙글 돌리면

점점 따뜻해져 오는 불의 온기와 깡통 속에서 타오르는 불의 크기만큼 커져오는

그 기분 좋은 속삭임들...

 

동그란 원 속에 갇힌 나는 그 공간이 마치 천국 같다고 느꼈었다

   그 열기와 휙휙거리는 소리만으로도...

 

 

 

 

 

 

가득 담겨있던 나무들이 거의 다 탈 때쯤,

동네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올라가 큰 달이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을 향해 높이 던져 올리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던 그 무수한 불꽃 불꽃들...

여러 명이 동시에 던질 때면 그 현란하던 불꽃의 군무는 환상의 극치를 밤하늘에 수 놓았었다

 

늦은 밤까지 계속 되던 그 아름다운 장난은 주위의 땔감이 다 떨어져야 끝이 났다

때로는 버려진 고무신을 넣고 돌리다가 불에녹은 고무 파편이 얼굴에 떨어져 화상을 입기도했다

 

고무 타는 냄새와 그을음은 왜 그리도 심하던지 손이며 얼굴은 온통 시꺼먼 숯처럼 변해 있고

던져 올렸던 불꽃으로 인해 옷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마치 난로를 뒤집어 쓰고 난 후의 모습 같이...

 

 

 

 

 

 

그리고 나면 이젠 슬슬 밭 두렁을 태울 차례다

침대처럼 푹신한 풀 섬에 불을 놓으면

엄청난 열기를 뿜으며 하늘 높이 타오르던 불꽃과 가눌 수 없는 기쁨들...

짓궂은 친구들의 얼굴에 묻은 까만 얼룩까지도 선명하게 비춰주던  그 환한 미소에

모두들 괴성을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었다

 

그 땐 불장난이 왜 그리도 재미있던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가끔 이불에 지도를 그리기도 했으니 어른들은 별로 좋게 봐 주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매년 대보름만 되면 그 때의 추억들이 어김없이 내 곁에 찾아든다

순수 하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는 내 마음속에 찾아와 함께 했던 그 시간과 친구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 공간은 아직도 우리들의 체온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시절의 개구쟁이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발코니의 창문을 여니 달빛을 안은 찬바람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고개를 들어 환한 달빛을 찾아서는 아들 녀석들과 집사람을 앞세우고 소원을 빌었다

각자의 소원은 다르겠지만 그건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나의 소원도 빌었다

올 한해도 우리 식구들 모두 건강하고 늘 웃으며 살 수 있기를...

그리고 각자의 소원도 꼭 이루어지기를...

 

창문을 닫으며,

환한 달빛을 폐부 깊은 곳까지 들여 마시니 그 시원함이 온 몸으로 스며온다.

 

 

 

2008.02.21..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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