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2008. 6. 22. 20:46내 삶의 흔적들/얘기

 

 

 

 

 

이 사

 

 

 

 2008년 6월 12일..10년 하고도 10개월을 살았던 집에서 이사를 했다

거리로는 10분 남짓 남쪽으로 내려갔으니

출퇴근 시간이 그 만큼 늘어났고 조용함도 한산함도 그 만큼 더해졌다

신혼 초, 별로 가진 것 없이 시작했던 신접살림에 쥐꼬리 만 한 봉급을 쪼개어 아끼고 아끼며

처음 내 집을 장만했을 때의 그 기쁨과 뿌듯함이 아직도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며 오롯이 남아 있는데

이제, 그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 보다 살던 집을 판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더 드는 건 왜 일까

처음으로 작은 아파트를 장만 했을 때의 그 힘들었던 과정 때문일까?
아니면 부대끼며 산 사람들과의 이별 때문일까?

 

 

 

 

 

 

 

이사를 가기 위해, 그동안 함께했던 분신 같은 짐들을 조심스럽게 싸는 동안에도

그리고 그 짐들을 싣기 위해 삿짐쎈타의 아저씨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사이사이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8남매의 우리 가족들...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나는 조금 큰 집으로의 이사를 동경해 왔다

제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위해 우리 집에 모였을 때함께 잘 수도 없는 공간 때문에 늘 미안함 마음이 앞섰는데

이제 그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졌으니 내 마음은 홀가분하다

이사를 오던 날부터 오늘까지 열흘이 흘러갔다막상 이렇게 이사를 하고 보니 다소 넓은 거실과 탁 트인 시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 할 느낌이 잘 나지 않는다

 

 

 

 

 

 

 

주말 내내 먼지를 닦고 쓸고 털어내기를 반복했는데도 그 먼지들은 어디서 그렇게 들어오는지

조금만 지나면 또 쌓여있다

이젠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피곤이 몰려온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찾아 챙겨 넣는 일과

자리를 찾아 옮기는 일, 그리고  공간에 맞게 자리를 찾아주는 일 또한 쉽지가 않다

 

위치를 잡느라 이리조리 발품을 파는 집기들도 꽤 피곤할 것 같다

정리도 대충 끝냈고 먼지들도 깨끗하게 털어냈으니속도 시원하고 기분도 한결 가벼워졌다

답답한 박스에 갇혀있던 물건들이 자리를 모두 찾았다

그들도 오늘 밤에는,새로운 안식처에 자리 잡고 누워서 행복한 꿈들을 꾸게 될 것 같다

아직도 입주한 세대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여기저기에서는 입주를 위한 막바지 공사들이 한창이다

분주한 인부들의 움직임과 집 전체가 울리는 듯한,요란한 소음들.

 

 

 

 

 

 

사람들의 체온을 받지 못 한 냉랭한 공기만 아파트 주위에 가득하니

하루 빨리 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넘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리를 끝내고 종이 박스를 버리기 위해 밖으로 나왔더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주위의 풍경들이 하나 둘 내 눈 속으로 들어온다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여러 동상들과 구조물들도 처음으로 멋있게 보이고 어느 덧 환한 둥근달이 아파트의 키 만큼 높이 떠올라 있다

마치 내 마음을 끌어올리려는 것 처럼...

 

이젠 조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주위를 쳐다보며 얼굴들을 익혀야겠다

아직은 낮 설고 어설픈 이 환경에서또 새로운 얼굴들과 분위기에 정 붙이며 잘 살아가야지...  

 

이사를 마치고...

2008.06.22..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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