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9. 20:38ㆍ내 삶의 흔적들/얘기
고향에서
시골의 정갈한 공기 때문인지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무척이나 요란스럽다.
넘어가는 햇살도 놀랐는지 발걸음을 늦추고...
200여 포기의 배추 모종을 앞밭에 심었다.
아니, 내가 심었다 기 보다는
배추모종을 일정한 간격으로 옮겨놓은 일을 했다.
네모 난 모종틀 안에 얌전히 앉아있는 갸녀린 어린 배추들...
모종이 다치지 않게 아래쪽에서 밀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배추 허리를 당겨 올리면
하나 둘 뽁뽁 뽑혀 나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얼마만인가.
맨발로 밭고랑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게...
발바닥에 느껴지는 폭신 거리는 흙의 느낌이 참 좋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이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찌르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느낌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 이상했다.
그 땐 밭일을 하기 싫어서 무척이나 힘들었었는데...
좋은 놈들을 골라 밭고랑에 가지런히 옮겨 놓는건 모두 마쳤는데
부드러운 어둠이 문앞까지 다가왔기에
할 수 없이 반 정도만 심고는 새벽을 기약하며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는 수돗가에 갔다.
내 얼굴보다 큰 해바라기가
만삭의 몸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큰 바위 얼굴이 머릿속에 딱 떠올랐다.
뭘 먹고 저리도 실 할까.
아마도 씨를 털면 한 됫박은 족히 될 것 같다.
마당 앞에 있는 녀석 보다 빨리 익은 걸로 봐서는
아마도 햇살이 더 많이 사랑해 줬나 보다.
그 옆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맛있게 열려있다.
더러는 빨갛고 더러는 크고, 작고...
저녁에 저놈들을 된장에 찍어서 맛있게 먹어야지...
흐르는 땀을 씻으려고 안경을 벗었다
이리저리 놓을 자리를 찾는데
빨랫줄에 거꾸로 서 있는 빨래집게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그렇지...!
안경다리를 집게에 조심스럽게 집어 놓고는
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며 손이며 발바닥을 샅샅이 씻고 있는데
흐릿한 어둠속을 걸어오던 동생의 이마에 안경이 부딪혔나 보다.
시멘트 바닥에서 들려오는 둔탁하고 날카로운 소리...
안경이 자유 낙하를 하며 낸 소리였다.
씻다가 말고 안경을 집어 가만히 살펴보니 다행히 별 이상은 없는 듯하다.
걱정스러워하는 동생에게 요즘은 안경알이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 옛날,
가을 쯤 되면 지게로 콩을 져다 나른 후 마당에서 콩 타작을 했다.
울타리를 빙 둘러 멍석으로 가렸는데도 도리깨로 콩을 내리치면
무수한 콩들이 서로 다투어 튕겨나갔다.
더러는 멀리 더러는 땅에 박히기도 하고...
꽤 많은 콩들이 부드러운 땅에 박혀서 쓸어 담을 때 애를 먹이던 마당이었었는데
이젠 모두 콘크리트로 깨끗하게 포장을 해서 그 옛날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신경 쓰는 동생에게 이상 없음을 확인시켜 주고 바쁘게 씻고 들어가는데
그 사이에 모기가 종아리를 여러 군데 물었다.
아으 씨~~
밥상에 둘러앉아 맛있어 보이는 고추를 골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적우적 씹고 있는데
갑자기 코끝에 전해지는 강한 충격...
워매~~매운거...
이게 먼 일이다냐?
더 이상 씹히기를 거부하는 녀석 때문에 그 한 입으로 마감을 했다.
그리고는 덜 매운 작은 녀석을 골라 몇 개를 맛있게 먹었다.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이 무척이나 진했다.
마음속으로 내일 올라갈 때 좀 따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종아리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가려움에
모기 물린 자리를 벅벅 긁고 있는 내게 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신다.
"모기들도 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을 아나 보다.
나는 물지 않던데..."
아직도 목소리 낭랑한 매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다.
2008.09.09..진.
어느 늦여름 날 고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