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밟다

2008. 6. 28. 09:35내 삶의 흔적들/생각

 

 

어린 시절 언젠가...

두툼한 옷을 껴입고는

조급한 마음으로 심부름을 갔다

 

사방은 시린 밤빛에 물들었고

찬바람은 날카롭게 옷소매를 스쳐갔다

종종걸음으로 흐릿한 길을 걸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바람결에 아른거리는 하얀색의 달을 밟으면

차가운 달속에 발이 빠지곤 했다

 

처마 밑에서 떨던 차가운 고무신 대신에

아끼고 아끼던 까만 운동화를 그렇게 적시고 나면

무척이나 속상하고 힘이 빠졌다

달이 원망스러웠다

 

달님이 내려와 앉아있던 그 평평한 길은

물 웅덩이였다

 

그 후로는

어스름한 달밤에 보이는 평평한 곳은

결코 밟는 일이 없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나의 유년시절이 평탄하지 못했던 것이

설마 그 때의 일들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지?

 

 

 

2008.06.28..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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