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0. 10:30ㆍ내 삶의 흔적들/얘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삭풍이 12월의 거리를 거칠게 지나가던 85년의 겨울.
인천 부평에 있는 한 평민당의원의 사무실에 도착한 건 오후 햇살이 아직도 찬 도시를 비추고 있을 때였다.
매스컴에서만 보고 들었던 5.18 광주 민중항쟁의 실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몇 몇 회사 친구들과 함께 찾아간 그 사무실엔 먼저 와 기다리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우리가 도착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엔 불이 꺼지고
어둠 속 작은 화면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들은 나를 경악하게 했다.
인간이 얼마나 더 폭력적이고 잔인해 질 수 있는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던 믿을 수 없는 말들의 실태.
차마 상상할 수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그 잔혹한 현실 앞에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시간들...
터질듯 한 가슴을 억누르며 봤던 1시간가량의 그 생생한 기록은 20대 초반의 나에겐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VTR이 켜진 그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온몸을 타고 내리던 그 형언할 수 없던 전율들...
모두들 돌이 되어 굳은 채 자리에 앉아 눈물만 흘리던 사람들...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결코 공개될 수 없는 그 충격적인 영상들을 난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 내 가슴속 깊은 곳을 차지하고 계셨던 분..
피눈물을 흘리며 그 광란의 시기를 공유했던 그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의 서거 소식에 왜 그때의 그 아픈 영상들이 그의 얼굴위로 스쳐 가는지...
2009.08.18.13:43..향년 86세...
차마 알 수 없는 깊이로 한 세상을 살다 가신님이여..
이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으며 그 본연의 순수한 정신으로 자유로운 곳에 머무시기를 기원합니다.
평생을 함께한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마시고 평온한 꿈속에 잠드세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곳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해 봅니다.
님의 영정 앞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소서...!
200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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