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지 까치 설날에

2012. 1. 22. 17:43내 삶의 흔적들/얘기

 

 

 

까치 까치 설날에

 

 

 

 

 

온 산을 덮고 있는 하얀 눈 위에 투명한 겨울 햇살이 정답게 쏟아지면

그 반짝임 속에는 어김없이 어설픈 사냥꾼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요란한 발자국들로 붐볐다

그건 설날이 가까워 졌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객지 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아직 한 번도 그런 의식을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설날 하루 전에는 꼭 만두와 칼국수를 빚어 만둣국 제사를 지냈다

아마도 한해를 무사히 지내게 해 주신 조상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행사였던 것 같다.

 

식구들 수와는 상관없이 큰 가마솥 가득 만둣국을 끓여냈다

만둣국 제사를 지내고 나서 동네 이웃들과 서로 나눠먹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넉넉하지도 못 한 살림살이였지만 정은 참 많았던 동네였던 것 같다

그 땐, 제사를 지낸 다음 날 아침에도 늘 동네 어른들을 모셔 와 아침을 대접하느라 분주했으니 말이다.

 

큰 그릇에 만둣국을 가득 담아서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두국을 나르는 일은 좀 귀찮긴 해도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두국을 나르다 보면 배달한 만둣국 만큼이나 동네 만둣국들이 우리 집으로 모이게 되는데

집집마다 다른 양념과 속을 넣었기 때문에 다양한 맛과 다양한 모양의 맛있는 만둣국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져다 주기도 하고 가지고 오기도 하며 이웃간에 나누었던 그 정이 참 좋았던 것 같다.

 

그 땐 모두들 그렇게 부유하게 살지 못하던 때였다

때문에 만두속은 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이거나 그리 비싸지 않은 것들을 썼다

다진 김치와 두부만 들어가도 맛있게 먹던 그 시절..

 

산토끼 고기가 들어간 만두도 맛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만둣국은 꿩 고기가 들어간 만두였다

새콤한 맛이 느껴지는 만두..

지금도 내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걸 보면

참 독특했던 것 같다.

 

찬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돌고 돌아 큰 대야에 모인 동네 만두국은 금방 퍼지고 식었다

그리고 발품을 판 덕분에 다시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묵처럼 변한, 식은 만두국을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묵처럼 변한 만둣국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그래서 설이 가까워지면 동네 형들은 꿩이나 토끼를 잡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특히 토끼 보다는 꿩을 잡는 것이 훨씬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라 더 많은 노력을 쏟았던 것 같다

설이 다가오면 사냥에 서툰 아이들까지도 부지런히 산과 계곡을 쏘다니며 토끼나 꿩을 찾으러 다녔으니...

별 성과없이 돌아온다 해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꿩을 잡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공기총으로 잡거나 약을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공기총으로 잡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콩에 작은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싸이나-불법이었지만- 라고 하는 약을 넣은 다음 바깥엔 초를 녹여 꿩이 알아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메웠다

그런 다음 그걸 꿩이 잘 다니는 양지바른 밭에 뿌리고는 수시로 망원경으로 그 밭을 주시하고 건너편 산들을 수색하러 다녔다

꿩이 그 콩을 먹는다 해도 약 기운이 퍼지기 전에 건너편 산이나 주변으로 날아갔기 때문에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귀한 놈이기도 했다.

 

허리춤에 꿩을 매달고 마치 개선장군처럼 씩씩하게 걸어내려 오던 형들의 모습.

그 착한 형들은 지금 쯤 어떻게 지내는지...

정든 친구들과 어르신들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 보고싶기도 하다.

 

얼마 남지 않은 설을 앞 둔 이 시간..

부엌에서는 차례음식을 장만하는 집사람 손길이 분주하다

동네 친구까지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웃음 섞인 기름 내음을 솔솔 풍기니 내 마음도 흐뭇하다.

 

지금 쯤,  내 살던 고향에서는 오손도손 모여앉아 궁금했던 이야기를 버무리며 만두를 빚고

조상님들께 올릴 정성 가득한 만둣국을 준비하는 손길들로 분주 할 것이다

하늘에서도 그리움 안은 하얀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그 따뜻한 만둣국 한 그릇을 먹고 싶다.

 

사랑과 정이 가득 담긴, 새콤한 맛이 느껴지는 어릴 적 그 만둣국을...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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