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26

2014. 10. 17. 00:26내 삶의 흔적들/얘기

 

 

 

 

 

아들아, 안녕?

 

TV도 꺼진 조용한 방에서 아빠는 오늘도 어김없이 널 만나러 왔구나, 반갑지?

근데..오늘은 왠지 아빠 마음이 울적~~하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맘 속의 무엇인가가 자꾸 걸음을 느리게 하고 마음을 초조하게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네

어젠 참 기쁘고 행복하고 좋았었는데...

이런 날, 너와 다정하게 마주 앉아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맘이 간절하구나

너의 그 해맑은 웃음을 술잔에 타서 허물없이 주고받다 보면 아빠의 혼란한 마음들도 다 녹아 없어질 것 같은데...

 

오늘은 아빠 모임이 있었는데 술은 반 잔만 마시고 일찍 들어왔다

억지로 잡아끄는 손에 이끌려 뒤풀이하러 갔다가 잠시 소란스러운 틈을 타 조용히 빠져나왔네

묵직한 돌이 가슴을 누르고 있는 듯 한 이 답답함이 빨리 해소되어야 할 텐데...

아름다운 계절, 가을인데 말이다.

 

경영아..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냈어?

혹시 비 맞으며 훈련받은 건 아니겠지?

 

힘든 훈련받는다고 보급관님께서 신경 많이 쓰셨나 보다

오늘도 증식으로 먹을 게 많이 나왔네?

소시지 2개에 초코바 1개, 생수 3개, 또  커피에 콜라에...ㅋㅋㅋ

근데 이 많은 걸 우찌 다 드셨을까?
핫팩을 가슴에 안고 엄마의 따뜻한 체온을 느껴보렴...

간식이라는 표현이 귀에 익은데, 증식이라고 하니 좀 다른 의미로 들리기도 하다.

 

아침에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하루를 깨우더니 기어이 기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리고 말았네

바람까지 을씨년스럽게 거리를 뒹굴고 떠나지 않으려는 젖은 낙엽까지 모조리 쓸고 가니

마음속 작은 방에 어설프게 자리 잡고 있던 작은 온기마저 두꺼운 외투를 걸치게 만드는구나

아빠가 이 세상을 뜨겁게 데우는 보일러라면 오늘 같은 날은 울 아들 있는 곳을 포근한 열기로 가득 채울 수 있을 텐데...

 

한기가 스며드는 텐트 속에 누워 있으면 뽀얀 입김이 위로 올라가 집을 그리고 가족을 그릴지도 모르겠다

그럼..가만히 눈을 감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을 아스라이 떠올려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게다

가족은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했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저 가족이라는 그 존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든든하고 보고 싶고 행복해야만 한다

그래..그게 가족이지..

 

가족이라는 단어에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힘이 재한다는 걸 명심하고 네가 힘들 때 한 번쯤 떠올려 봤으면 한다

네가 그랬지?

엄마 아빠는 너에게 항상 큰 언덕이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 하더구나

언제 저렇게 컸을까...

언제 저런 생각들을 키워 왔을까...하며...

엄마 아빠는 그렇게 잘 커준 네가 늘 고맙다

엄마 아빠가 네게 언덕이었다면 그건 사실 책임과 의무 같은 것이었는데...

그 언덕이 어떤 언덕이었는지는 나중에 아빠도 느끼게 되겠지...

 

이렇게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날, 각개전투 교장에서 숙영을 하는 날이라고 하니 왠지 더 마음이 쓰이고 긴장된다

자신이 잘 텐트도 스스로 치고 야간 각개전투 훈련도 받으며이겨내려면 동기들의 많은 협력이 필요할 거다

서로서로를 의지하며 단결심과 협동심을 발휘해서 나보다는 동기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힘든 숙영도 훨씬 잘 견뎌낼 거야

혼자가 아니고 힘든 시간을 함께 하는 동기들이 있어서 잘 참아내게 된다는 걸 이젠 너도 느끼고 있겠지?

 

두꺼운 외투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네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아빠 마음도 많이 잔잔해지네

네 미소와 표정과 목소리가 그리운 밤이다

밤 사이에 제발 비만 내리지 말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야생에서의 하룻밤이 어땠을지..아빠는 몹시 궁금하다

 

아들아..

내일의 태양은 그래서 더 따뜻할 거야

편안히 잘 자고 오늘도 좋은 꿈 꾸는 거 잊지 말고...

 

힘내...

그리고 파이팅하는 거  알지? ㅎㅎ

내일 또 보자~~~^.~

 

널 많이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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