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위해 태어난다
2008. 11. 5. 10:18ㆍ내 삶의 흔적들/얘기
가을을 위해 태어난다
나무는 가을을 위해 태어난다.
한겨울의 거친 풍파 속에서
손과 발이 트고 갈라지면서도 알찬 종아리로 꿋꿋하게 버텨줬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 햇살 받으며 돋아나는 여린 잎새들.
내 머리카락을 닮은 녀석과 눈을 닮은 녀석들,
그리고 귀를 닮고 코를 닮고 입술을 닮은 예쁜 잎새들...
저 잎들을 고이고이 길러내는건 가을을 위해서다.
가을 날,
뿌리까지 뽑힐 것 같은 광풍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으려 애쓴 녀석은 노란색의 얼굴이 되었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 온 몸을 떤 붉은 입술은 빨간 얼굴로 바뀌었고
올라오는 양분은 듬뿍 받았지만 뜨거운 햇살을 거부한 녀석은
주황색의 얼굴을 하고는 얌전하게 매달려 있다.
머리카락을 닮아 냉철한 솔잎은 여전히 푸른 기개를 자랑하고...
온 몸으로 번졌던 트고 갈라진 산고의 흔적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또 내년 가을을 위해 그 가여운 몸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된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어느 날,
나를 위로하던 그 예쁜 잎새들은
간다는 말도 없이 조용히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지만
아름다웠던 그 얼굴은 여전히 나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형형색색의 유년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채우고는 돌아가겠지...
나무는,
가을의 나무는 참으로 예쁘다.
내 인생의 황혼도 그랬으면 좋겠다.
2008.11.4..진.
짙어가는 가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