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말

2008. 11. 16. 20:21내 삶의 흔적들/얘기

 

 

 

 

 

듣고 싶은 말

 

 

 

 

2008년,

결혼 한지 17주년이 되는 해다.

 

기념일 날,

출근을 한 후 집사람한테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여보, 결혼 17주년 축하 해.

그리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늘 지금처럼 살자"

 

얼마 후 문자가 왔다

 

"이런 멘트는 앞으로 10년 유효하니까

다음부터는 이런 말 안해 줘도 돼"

 

이게 뭔 소린가?

듣기 좋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이 정도의 단어로 답장을 하다니...

 

답장 치고는 좀 분위기가 없긴 했지만

평소 집사람의 표현을 알고 있는 터라 그러려니 넘어갔다.

좀 더 표현을 다듬었으면 좋았겠지만

답장이라도 해 준 걸 고마워했다.

 

무뚝뚝한 사람을 만나 한 이불을 쓰며 산지도 어언 17년...

그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아직도 듣지 못했던 말이 있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

아니면

 

"사람이 갈수록 진국이네"

라든지

 

"난 당신과 결혼하길 잘했어" 

"추억을 생각하며 낙엽이 쌓인 길 좀 걸어볼까"

와 같은 말들...

 

 비가 오는 날,

작은 우산을 꺼내들고 팔짱을 끼며

 

"간만에 애인처럼 같이 좀 걸어볼까"

라고 해도 좋고

 

함박눈이 오는 날,

두꺼운 외투의 옷깃을 높이 치켜 올리며

 

"여보, 간만에 우리 두 사람 발 도장 찍으러 갈까?"

또는

 

"아무도 가지 않은 오솔길을 함께 걷고 싶어"

라는 말도 괜찮을 것 같다.

 

출근 준비 하느라 바쁜 내 뒤를 따라다니며 옷매무새도 좀 만져주고

 

"당신 오늘따라 멋져 보여"  라든지

 

 내 엉덩이를 톡톡 건드리며

 

"오호, 아직도 빵빵한 게 쓸 만한데?"

라고 해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난 당신이 곁에 있어서 행복 해"와 같은,

굳이 비행기 태우는 말이 아니더라도

사소하지만 어깨가 펴지는 그런 말 한마디쯤은

남자인 나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여자만 사람인가?

여자들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남자들도 때로는 그런 말을 듣고 싶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드라마에서는 가끔 그런 말을 하는 부부들을 보게 되던데

우리의 생활에서는 좀처럼 듣지 못하는 말인 것 같다.

현실과 드라마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지만...

 

살다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얼굴 붉히며

큰소리가 오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운치라도 있어야 서운하고 서먹한 관계가 치유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가 살갑게 굴지 않아서 그렇게 못 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을 테지만

그거야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콧소리 넣어가며 얼굴을 코밑에 들이밀면 나라고 별 수 있을까?

 

기다리다 지쳐서 무거운 생각으로 덮여지기 전에

나도 한 번 쯤 그런 말들을 듣고 싶다.

                                                                                      

 

 

 

2008.11.16..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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