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식

2008. 12. 7. 00:28내 삶의 흔적들/얘기

 

 

 

어느 결혼식

 

 

 

 

 

오늘은 느즈막 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서울 강남으로 향했다.

오후 1시에 있을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지하철을 타고 갈까 하다가 거리상 더 멀 것 같아 그냥 애마를 몰았다.

외곽 고속도로를 지나 강남에 들어섰는데 차들이 막혀있다.

이틈에 다시 한 번 지도를 펴고는 위치를 파악하는데

여긴지 저긴지 긴가민가하다.

 

"가다가 보면 나오겠지" 하고는 천천히, 천천히 밀려가는데

마침 저 앞쪽에 그 건물이 나타났다

다행스럽게도 헤매지 않아서 20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 주차장은 벌써 만원인데 차들은 계속 밀려들어온다.

지하를 두 바퀴나 돌았는데도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2중 주차를 하고는 식장으로 올라갔다.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분의 자제가 결혼하는 날인데

무슨 일인지, 내가 결혼하는 것처럼 가슴까지 두근거린다.

입구에 서 계시는 그 분께 축하 인사를 드리고

사모님과 가족 분께도 차례로 인사를 하고는

지정석을 찾아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호텔이라 그런지 정말 으리으리하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예식이 시작됐다.

오늘은 교회 식으로 진행된다.

 

멋진 신랑과 예쁜 신부가 들어와 주례님 앞에 서니

순백의 날개를 단 두 천사들이 서 있는 듯하다.

엷은 미소를 흠뻑 머금은 천사들...

정말 예쁜 한 쌍이다.

 

곧이어 축가가 시작됐다.

"Serenade To Spring"에 가사를 붙여

김동규님이 불렀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개사한

"12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는 제목의 고운 노래다.

 

고요함 속에서 울려 퍼지는 조화가 잘 이루어진 목소리는 하객들을 압도한다.

교회 중창단의 일원으로 사모님께서도 맨 앞줄에서 함께 불러 주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들과 며느리 앞에 화사한 모습으로 서서

사랑 가득한 눈웃음과 고운 목소리를 전해주시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내게도 전해오는 것 같았다.

 

이어진 축가는 신랑 외삼촌이 했다.

소프라노 색소폰을 들고 나오셨다.

무슨 연주를 하실까...

 

잠깐 동안 정적이 흐르고 피아노의 전주에 이어서 들리는 부드러운 소리...

영화 "미션"의 주제가인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흘러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연주곡인데 어떻게 저 곡을 선택하셨을까?

아마도, 전해주고자 하는 뭔가를 어린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조카는 알고 있겠지?

 

그 연주가 끝날 때까지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지켜본 것 같다.

한참 동안을 박수를 치며 서 있었다.

 

식사와 함께한 2부의 시간도 각종 축가들로 함께했다.

가족,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하는 축제 같다

흥분을 감추고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려니

조금씩 넘긴 한잔의 포도주 때문인지 얼굴이 달아오르고

남모르게 흘린 눈물 때문인지 머리까지 아파온다.

 

얼마나 흘렀을까?

긴 시간동안 예식이 진행됐지만 난 그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지루함도 잊은 채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나는 오늘,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많은 사람들의 진심어린 목소리와 함께했다.

일상적인 결혼식일 수도 있으나 내게 다가오는 느낌은 왠지 달랐다.

결코 잊혀 지지 않을 감동적인 영화 한편을 본 듯하다.

 

참 기분 좋은 밤이다.^.~

 

 

 

 

 

2008.12.06..진.

  

'내 삶의 흔적들 >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렌타인 데이  (0) 2009.02.18
아들에게  (0) 2008.12.31
이 불  (0) 2008.11.21
듣고 싶은 말  (0) 2008.11.16
가을을 위해 태어난다  (0) 2008.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