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9

2014. 9. 28. 22:44내 삶의 흔적들/얘기

 

 

 

 

 

아들..

오늘 하루도 잘 지냈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을비가 소리없이 내리고 초롱초롱한 물방울들이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더구나

마치 지금 네가 있는 그 곳 훈련병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망울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요즘 뜨거운 가을햇살에 얼굴은 검게 그을리고 군기가 바짝 든 눈에선 광선이라도 나올 듯 할거다

조금 열린 네 방 창문을 닫고 있으려니 순간, 보고싶은 마음이 들어서 가슴도 뭉클..

잠시 서성이다 나왔다.

 

어젠 엄마와 같이 네가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한 부형의견서를 썼다

네 친한 친구들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는 란이 있는데.. 아쉽게도 전화번호는 하나도 못 썼다

순간 좀 당황스럽더구나

네게 좀 미안하기도 하구

아빠가 되서 내 아들의 친한 친구들 전화번호 하나 모르고 있다는게...

원재나 기성이 엄마들 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알 수도 있겠지만 지금 모르고 있는 사항이라 그냥 이름들만 적었다

오늘 부쳤으니 며 칠 후엔 도착하겠지.

 

지금 피부상태는 어떻니?

갈 때 보다 좀 나아졌는지, 그 상태인지, 아니면 더 나빠졌는지 알고 싶은데 소식을 전해 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하구나

한 달 분 약을 지으려면 지금의 상태를 좀 알아야 할텐데...

이번 주까지 특별한 기별이 없으면 입대 전에 지었던, 마지막 처방으로 지어 보낼게

신경써서 잘 먹고 하루라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구호를 외치고 고함을 지르며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바깥의 일들은 생각도 안나지?

그러다가 저녁이 되어 피곤한 몸을 다독이며 생활관에 누울 때 쯤엔 가족들과 친구들 생각도 간절할거구

가끔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엄마한테 짧은 편지라도 좀 써서 보래렴

늘 걱정을 하고 계시니 마음이라도 좀 편하게...

짧은 일상이라도 네 편지를 보면 엄마 마음에 큰 위안이 될거야.

 

있잖아~

오늘 아침엔 재영이 태우고 등교시키다가 학교로 가는 길로 안가고 엉뚱한 길로 아빠도 모르게 갔나봐

늘 아무말도 없던 재영이가 갑자기 학교로 안가냐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학교가는 길로 안가고 그냥 아빠 회사로 가는 중이더라고......헐~

순간 무척 당황했다

집에서 나오면서 부터 아빠 머릿속은 계속 네 생각으로 꽉 차 있었는데, 그래서 그랬나 봐

지금까지 재영이 등교 시키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참 별일도 많구나

그래서 약 8키로 쯤 되는 길을 빙~돌아서 학교에 내려주고 오는데..

비가와서 그런지 길은 가는데 마다 왜 그리도 막히는지..마음은 엄청 바쁘고..참 ..

원래 회사에 도착하면 출근시간 15분 쯤 전에는 도착하는데 오늘은 20분 쯤 지각을 했다

네 덕분에...ㅎㅎ~~

 

아빠도 요즘 깜빡깜빡 하는 일이 자주 있네

갑자기 생각하려고 하면 평소에 쓰던 단어도 생각 안나고 한 번 막히면 도저히 기억이 안나니 참..

아빠도 이제 늙어가나봐.ㅎㅎ~

돌이켜보니, 너희들 커가는 것 만 바라보며 기특해 하고 행복해 했지 아빠 나이 먹는 건 생각도 못하고 살았었네

그러다보니 벌써 엄마 아빠 나이도 벌써 이렇게...

그래도 엄마 아빠가 아직은 건강하니까 걱정은 말거라

 

오늘 낮에 혹시나 해서 을지교회에 들어가 봤는데 21일 예배 스케치 사진 중에 꼭 울아들 같은 사진이 있던데..맞지?

가운데 줄 왼쪽끝에서 뒤로 다섯 번 째 줄에 앉아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돋보기로 자세히 봤더니 울아들이 맞더라

무척 반가웠다 ㅎㅎ~

하얀 얼굴에 입을 약간 벌리고...

다행스럽게도 널 확인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분 좋았단다

교회가 꽉~찼더구나

그 사진을 복사라도 해놓고 싶었는데 못하게 해 놔서 핸펀으로 사진 찍어놨다

잘 했다 울 아들...

근데..28일 날 찍은 사진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주말엔 꼭 교회에 갔으면 좋겠구나, 활동도 많이 하구...

와우리교회에 다닌다고 하고 아빠도 신교대교회에 회원가입 했다.ㅎㅎ~

 

비가 오는 날은 야외훈련은 안하지?

오려면 어설프게 오지말고 훈련을 못 할 정도로 오면 좋으련만...

오늘은 정신교육을 했다고 중사님께서 말씀하시고 2주차 힘든 훈련을 위해서

초코파이랑 롱~초코바도 보급했다고 하시더라, 에너지 보충을 위해서...

울아들..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이 편지 읽으며 푹 쉬고 힘들었을 하루..잘 마무리 하길 바란다

무엇이든지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는 거 알지?

그럼 또 편지 할게~

 

울아들 홧팅~~

 

널 많이 보고싶은 엄마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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