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2. 15:26ㆍ내 삶의 흔적들/얘기
사랑하는 아들 경영이에게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하루종일 오락가락 하더니 저녁이 되어도 계속 내리고 있다
기온도 제법 많이 내려가서 긴 팔 셔츠를 입었는데도 쌀쌀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마음만 자꾸 급해지는구나
거기에 사랑하는 울 장남이 있으니...
아들~
오늘 하루도 훈련 잘 받고 열심히 보냈지?
카페에 들어가 보니 오늘은 소총의 조작 및 관리 그리고 사격술 예비훈련을 했구나
재밌었어?
그래..그렇게 즐겁게, 재밌게 하면 되는거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 알지?
어차피 하는 거 내 마음을 모두 실어서 열심히 해야 더 보람도 있고 성취감도 크게 되고...
암튼 고생 많았다.
요즘 많이 느낄거다
하기 싫어도 평소에 운동을 좀 해놔야 훈련 받을 때 덜 힘들다고 아빠가 늘 하던 말..기억 나지?
그 때 아빠 말 좀 들었으면 힘든것도 좀 덜 할텐데...ㅠㅠ
오늘은 PX에서 물품도 구매했다고 하던데...
물티슈, 바세린, 비누, 칫솔, 등등...
필요한 거 있으면 너두 좀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지고 있는 돈이 좀 있는지 모르겠다만.. 필요하면 얘기하렴.
오늘 아빠는 회사에서 예배를 드렸다
한 달에 한 번, 목사님이 회사로 오셔서 드리는 예배인데 오늘은 한 시간 반 동안 드렸다
힘든 훈련을 받고 있는 널 위해 기도도 드리고 다치지 않게 해 달라고 애절하게 부탁도 드렸다
왠지 모르게 코가 시큰해지기도 하더구나
전에는 아빠도 교회를 다녔었는데 요즘은 안다니는 거 알지?
예전에 교회 다닐 땐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다녔었고 미치도록 교회에 빠지고 싶었는데,
아니 미치도록 그 분께 의지하고 싶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잘 안되더구나
사실 아빠한테는 부모님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가 있다, 잘 치료되지 않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잃다보니 아빠도 모르게 생긴 마음의 병 같은 게 있지
너도 대충 알다시피 아빠가 고2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2살 때 너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너무나 긴 시간동안 방황하며 마음을 잡지 못하고 힘들어 했었다
세상의 모든 신들한테 물어봤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냐고...
신들을 원망하며 분노하며 좌절하며...
그 때 교회도 다녀보고 성당에도 열심히 다녀봤지만 맘 속의 그 공허함과 분노 같은 걸 결코 해결하지 못했었다
주위의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이 계시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엔 너무 어렸었는지...
뭐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진 못 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아빠도 다시 교회에 나가려고 맘 먹고 있단다
"시련은 그 사람이 극복 할 수 있을 만큼 만 준다" 는 말을 이젠 꼭 믿고 싶다
그 땐 이 말 자체를 부정했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으니까...
아빠는 늘 이런 생각을 하며 20대를 살았다
울 가족들에겐, 예전에 아빠가 어린나이에 짊어졌던 그 무거운 가족부양의 짐을 지게 하지는 않을거라고...
너희들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또 생활이 안정이 될 때까지는 가족부양에 대한 걱정은 없도록 해 주리라고...
그래서 20대 때 아빠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열심히 운동도 하고 체력단련도 했었지..
그땐 한 달에 단 두 번 만 쉬며 일했었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며 마음 속 그 울분들을 오롯이 일 속에 쏟으면서 참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래야 맘 속의 잡다한 생각들과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아물지 않은 아린 상채기들을 견뎌 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네 엄마를 만나 결혼을 하고 너희들을 낳고 조금씩 조금씩 커가는 모습과 귀엽게 재롱떠는 걸 바라보며
아 "행복이란 게 이런거구나" 하는 것도 진정으로 알게 되고...
그래..아빠의 20대는 그랬었다
그리고 너희들에겐 결코 그런 것들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구나
아빠 혼자만의 아픔으로도 충분하니까...
남자는 강해야 한다
아니 가장은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또 열심히 일해야 하고 운동해야 하는거다
언젠가 얘기했었지?
엄마 아빠는 너희들이 학교를 졸업 할 때 까지만 책임진다고...
그 후에 만나는 날들은 너희 스스로 만들고 해쳐나가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엄마 아빠는 적당히 오래 살면서 네게 든든한 언덕은 되어 줄거야
그러니까 낮설은 세상에 나가더라도 절대로 겁을 먹거나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오늘은 애기가 좀 딴 곳으로 흘러갔네
오늘로써 열 두 번 째 편지를 쓰다보니 이젠 너와 마주앉아 긴 대화를 하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든다
큰 아들과 마주앉아 깊은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이런 기회를 통해서 하게 하는지도 모르겠구나
이 아빠가 무뚝뚝해서 대화도 많이 없었는데 이럴 때 많이 하라고 그랬나 보다.ㅎㅎ~~
예전에 함께 나누지 못했던 지난 이야기들을 앞으로라도 조금씩 조금씩 나눠 보자꾸나.
지금 이 시간이면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을 것 같네
울아들..오늘도 힘들었지?
오늘 증식으로 나온 쵸코파이의 그 맛처럼 달콤한 밤이 되길 바래
언제나 홧팅 하는 거 알지?
힘 내고 좋은 꿈 많이 꾸고...
잘자~
경영이를 많이 보고싶어 하는 엄마 아빠가...^^
PS; 오늘 또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23일 날 쓴 편지구나
우째.. 먼저 쓴 편지가 너 늦게 왔네?ㅎㅎ~
녀석..네 편지를 읽고 있으려니 눈물이 핑 돈다..엄마도 눈시울이 붉어지는구나.
고마워 아들..두..고..두..고.. 읽어 볼 게```^^